정책

청년 복지라는 단어가 어쩐지 남의 일처럼 들릴 때

admin 2026-06-13
청년 복지라는 단어가 어쩐지 남의 일처럼 들릴 때

뉴스에서 보는 청년 정책과 내 통장의 온도 차

요즘 뉴스나 포털 사이트를 켜면 유독 청년 복지라는 단어가 많이 보인다. 영암군에서 뭘 새로 시작한다거나, 고립 청년이 54만 명이라는 통계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걸 보고 있으면 가끔 묘한 기분이 든다. 어딘가에서 9년 치 통계를 분석해서 20대의 반전이 어쩌고 하는 기사들을 보면, 사실 당사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저 ‘아, 또 무슨 정책이 나오는구나’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주식이든 창업이든 결국 종잣돈이 있어야 시작을 할 텐데, 월급은 매달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정거장 같은 느낌이라 그 복지라는 게 나랑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만원 상가나 청년 씨앗 통장 같은 이름들을 보면 참신하긴 한데, 이게 내 당장 내일의 끼니나 월세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인가 싶어지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헌혈 유공자 팻말을 보며 느낀 세대의 간극

최근에 어떤 기사에서 400회 이상 헌혈을 한 분이 보건복지부에서 팻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그 밑에 붙은 ‘2030 세대의 헌혈 참여가 현저히 저조하다’는 문구에 눈길이 머물렀다. 왜 저조할까? 단순히 청년들이 이기적이거나 건강에 관심이 없어서일까? 내가 아는 친구들은 하루하루 버티느라 바쁘다. 알바 세 개를 뛰는 친구도 있고, 공무원 시험 공부하느라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는 친구도 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타인을 위해 헌혈하러 갈 시간을 내는 게, 누군가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세대 갈등이라기보다는, 그냥 각자의 삶이 너무 팍팍해져서 타인을 돌아볼 여유라는 자산이 고갈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립 청년이라는 단어에 갇힌 고민들

고립 청년 54만 명이라는 기사를 클릭했다가 댓글창을 보고 금방 닫아버렸다. ‘현실판 오징어 게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는데, 그 안에서 누가 잘했네 못했네 싸우는 걸 보니 더 마음이 답답해졌다. 나도 가끔은 주말 내내 방 문을 잠그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을 마주쳐야 하고, 적당히 밝은 척해야 하고, 묻지도 않은 미래 계획에 대해 답해야 하는 게 너무 피곤해서다. 이게 ‘고립’인가, 아니면 그냥 ‘휴식’인가. 그 경계가 모호한데 뉴스에서는 무조건 치료나 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분류하는 것 같아 좀 불편했다. 복지 정책이 나를 도와주는 건지, 아니면 통계의 숫자로만 보려는 건지 가끔은 그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고향사랑기부제는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일까

며칠 전에는 부산고향사랑기부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기부를 하면 세액 공제를 해주고 답례품을 준다는데, 일단 기부를 할 여유 자금이 있어야 공제도 받는 거 아닌가 싶었다. 10만 원을 기부하면 13만 원어치 혜택을 받는 구조라는데, 사실 그 10만 원을 묶어두는 게 나 같은 사람에겐 꽤 큰 결정이다. 당장 이번 달 관리비나 통신비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방에 기부를 한다는 게 마치 ‘여유 있는 사람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좋은 취지라고 하지만, 정작 청년들이 지역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이런 거창한 기부제보다는 정말 당장 피부에 닿는 실질적인 혜택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말의 무게

어떤 당선인이 지역 통합을 외치며 청년들이 돌아오게 하겠다고 공언하는 걸 보았다. 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말이 참 거창하고 멋지다. 그런데 막상 내가 사는 동네를 돌아보면 24시간 영업하던 카페는 10시에 문을 닫고, 집 앞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늘 바뀌어 있다. 이게 내가 겪는 현실이다. 정책관을 신설하고 기금을 조성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런 수많은 정책의 이름들이 내 삶을 아주 조금이라도 바꾸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숫자들의 잔치인지는 정말 모르겠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그때 그런 정책이 있었지’라고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내 삶이 나아질까? 지금은 그저 내일 아침에 눈 뜨면 다시 시작될 일상이 조금 덜 막막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뾰족한 해답은 없지만, 이런 답답함이 나만 느끼는 건 아니라는 사실에 아주 조금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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