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청 페이지를 열 때까진 쉬울 줄 알았는데
지인으로부터 농촌 정착 지원금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영광군이나 충남도 같은 곳에서 청년 농업인들에게 최대 3,600만 원 정도를 지원한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처음에는 솔깃했다. 도심의 사무실 월세는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고, 공유 회의실에서 노트북이나 두드리는 일상에 조금 지쳐있던 터라 농사라는 게 꽤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대학생 때 잠깐 아르바이트로 아이스베리 같은 카페에서 일하며 고생했던 기억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겠지만, 적어도 ‘내 일’을 한다는 건 매력적이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지원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이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서류 검토하다가 하루가 다 갔다
청년농업 희망카드라는 게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궁금해서 공고문을 읽기 시작했는데,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영농 계획서부터 시작해서 각종 자격 증빙 서류가 정말 끝도 없었다. 5년 거치 20년 상환으로 최대 5억 원까지 융자를 해준다는 후계농 육성자금 항목도 눈에 들어왔지만, 농업 경영체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나 같은 초보가 덜컥 신청하기에는 준비해야 할 서류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사무실 임대차 계약서 챙기랴, 4대 보험 환급 관련 서류 확인하랴 정신이 없는데 여기다 영농 계획까지 짜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외식업 교육을 들으러 다니던 친구가 ‘사업자 하나 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지원 정책의 온도 차이에 대하여
어디서는 일회성 지원금보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적 근거가 우선이라고 하고, 또 어디서는 청년 교통비 지원 같은 당장의 현금성 혜택을 이야기한다. 뉴스에서 청년도약계좌 납입을 며칠 빼먹었더니 기여금이 줄어들었다며 우울해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진짜 맞나 싶기도 하다. 정부 지원금이라는 게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서 수혜자가 되려고 발버둥 치다 보면 내가 원래 하려던 일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오직 ‘선정’되기 위한 과정에만 매몰되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나도 지금 농업이라는 본질보다는 어떻게 하면 서류를 깔끔하게 다듬어서 통과할까 하는 고민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약간 회의감이 들었다.
전문가의 조언보다 더 큰 장벽
주변에서는 창업 지원이나 소상공인 대출 같은 정보가 돈이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은 쏟아지는 정책 속에 파묻혀 있어서, 정말 나한테 필요한 정보를 찾으려면 매일같이 지자체 게시판을 확인해야 한다. 작년에 교육 과정 하나 신청하려고 밤새도록 서버랑 씨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결국 대기 순번에서 밀려나서 못 들었는데, 지금 이 지원금도 그때랑 비슷하게 흘러가는 건 아닐까 겁부터 난다. 3,600만 원이라는 돈이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 돈을 받기까지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과연 남는 장사인지도 잘 모르겠다.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결국 창을 닫았다. 마음 한구석에는 ‘그래도 넣어볼까’ 하는 미련이 남아있지만, 지금 당장 무리해서 영농 계획서를 작성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농촌에 내려가서 사는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도 없으면서, 단순히 지원금이 나온다는 사실 하나에 이끌려 서류를 준비하는 건 어쩌면 나중에 더 큰 후회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조금 더 냉정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지원 정책들이 왜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접근한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영수증들이나 다시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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